생존율 14%→95% 만든 기적의 신약, 글리벡 이야기
2022.03.10 · 암스쿨
암이 유전자 질환이라는 최초의 증거로 평가되는 것은 1960년 미국 펜실바니아 대학교의 노웰(Peter Nowell) 교수와 대학원생 헝어퍼드(David Hungerford)가 만성골수성 백혈병(CML) 환자의 백혈구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환자들의 22번 염색체가 일관되게 짧은 염색체의 이상 현상을 발견한 것이다.
이렇게 짧게 변형된 22번 염색체를 필라델피아 염색체로 칭한다. 이 발견은 그 때까지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가지고 있던 바이러스가 암을 유발한다는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사람의 염색체가 46개(23쌍)로 이뤄져 있다는 것을 확증한 1956년으로부터 4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이후, 1970년대 들어 개발된 염색체에 형광염료 처리로 독특한 띠 패턴을 확인할 수 있는 ‘염색체 띠 기법’을 활용하여 1973년 미국 시카고대의 유전학자 자넷 롤리교수가 필라델피아 염색체의 실체를 밝혀 내는데 성공했다. CML 환자의 22번 염색체 말단이 그보다 크기가 작은 9번 염색체 말단과 바꿔치기 되는 ‘전좌 (translocation)’ 현상으로 인해 정상인과 비교해서 22번 염색체는 작아지고 9번 염색체는 약간 더 커진 것을 발견한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50여년 전의 일이다.
암 세포를 만드는 티로신 키나제 효소
22번 세포와 9번 세포 사이의 전좌 현상이 왜 일어나는 지에 대한 의문은 계속 남는다. 유전적 원인인지 외부 환경 요인 때문인지 아니면 노화나 세포 분열의 오류 때문인지 그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도 명확하게 규명되지 못하고 있다.
전좌 현상을 유발하는 원인은 모르지만, 1978년 암세포에서 인산화효소(kinase)가 과잉 발현된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인산화 효소는 단백질에 인산기를 붙여 단백질을 활성화시킴으로서 세포의 성장과 분열을 유발하는데, 이 인산화효소에 변이가 일어나면 세포 성장과 분열이 과도하게 일어나게 되어 세포 분열이 멈추지 않는 돌연변이 암세포가 만들어 지게 되는 것이다.
1983년 미국 MIT대의 볼티모어 교수팀은 필라델피아 염색체의 전좌가 일어난 부분이 Bcr 유전자가 있는 자리이고 전좌가 일어나면서 9번 염색체에서 온 Abl이라는 유전자와 결합되면서 Bcr/Abl 이라는 유전자가 암세포의 세포막에 있는 인산화 효소인 티로신 키나아제의 작용을 촉진시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CML환자의 경우 유전자 전좌가 변이된 인산화 효소를 야기해 세포 분열이 적절히 통제되지 못하는 상태가 초래된 것을 밝혀내게 된 것이다. 이러한 발견은 만약 인산화 효소를 억제할 수 있으면 암세포가 억제되지 않을까라는 항암 신약의 아이디어를 잉태하게 된다.
글리벡 개발
1984년 시바게이지의 연구원 알렉스 매터는 화학자 짐머만과 생물학자 라이든을 불러 들여 인산화 효소를 억제하는 항암제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다. 그들은 약물이 모든 인산화 효소를 다 방해하면 생명체가 유지될 수 없기에 암세포에서 활동하는 인산화효소만을 억제하는 약물 개발을 목표로 했다.
5년 후 그들은 만성골수성 백혈병을 일으키는 Bcr/Abl 인산화효소에 붙어 작용을 억제하는 CGP-57148B를 개발하기에 이르렀지만 미국에서의 환자 수 부족 때문에 임상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더욱이, 환자 대상의 임상이 한계에 부딪히고 있는 동안 동물을 대상으로 독성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중에 일부에서 간 손상이 확인됨으로써 시바게이지 사내에서는 약물개발 중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매터외에 화학 전공의 임상의였던 브라이언 드러커는 다나파버 암연구소에서 Abl 인산화 효소의 작용으로 인산화가 되는 단백질을 항원으로 인식하는 항체 개발에 성공했다. 다나파버 암연구소와 시바게이지가 협력관계를 맺고 있어 매타와 드러커가 함께 만성골수성 백혈병 치료제 개발에 노력하게 된다.
이 후 매터가 일하는 시바게이지는 산도스와 합병후 노바티스라는 거대한 제약사가 되게 되었고 합병 후 부임한 새로운 경영진에게 임상 약속을 받아내는데 성공한다. 브라이언 드러커는 오레곤 보건과학대로 자리를 옮겨 임상 대상을 좀 더 넓힐 수 있게 되어 세 곳에서 임상 1상을 하게 되었다.
임상 1상에서부터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다. 본래 임상 1상의 목적은 약물의 부작용 여부와 적정 복용량을 찾아 내는데 있었는데 약 복용 환자의 상태가 급속히 좋아짐은 물론 기존의 항암약 대비 부작용도 크지 않았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골수 검사 결과 필라델피아 염색체 수의 비율이 급격히 낮아진 것이다. 임상 1상의 소식이 널리 퍼지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CML환자들이 임상 2상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임상 3상 데이터는 추후에 제출한다는 조건으로 임상 2상까지의 데이터만으로 2001년 2월 FDA에 승인 신청, 3개월 후인 5월 판매를 승인 받게 된다. 이렇게 해서 만성골수성 백혈병 환자의 생존율을 14%에서 95%로 획기적으로 끌어 올린 기적의 신약 글리벡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암 치료제 개발 전망
암이 왜 발생하는 지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암 세포의 특징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은 계속 밝혀지고 있다. 2000년 이전까지만 해도 불치병이라 여겼던 만성골수성 백혈병(CML)이 글리벡 개발로 이제는 95%에 이르는 완치율을 보이는 현실을 보면, 암 치료제 개발에 있어서의 획기적인 진전이 언제 우리 눈 앞에 다가올지 모르겠다는 기대를 갖게 된다. 또, 암 세포의 특징을 밝혀내려는 노력이 의학은 물론 세포 대사학이나 화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창의적이고 통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신약 개발에 대한 우리의 기대를 더욱 높여 준다.
암스쿨에 게재된 기사는 미국국립암연구소(NCI), 미국암협회(ACS), 국립암센터(NCC), 일본국립암연구소(NCCJ), 엠디앤더슨암센터(MD Anderson Cancer Center) 등 검증된 기관의 검증된 자료를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이 글은 2022년 3월 작성 시점의 정보입니다. 치료 기준·급여 정보는 바뀌었을 수 있으니, 진료와 치료 결정은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