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위암 3기] 위암 투병기
2021.10.27 · 암스쿨
여성
위암 3기
수술, 항암
저의 아버지께서 약 9년 전쯤에 위암으로 1년 정도 투병하시다 영원히 저희들 곁을 떠났지요. 병원에서 그냥 집에 돌아가셔서 편히 모시라는 소리를 듣고 참으로 암담하고 절망스러운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런데 과학자들이 암은 유전이 아니라고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제가 아버지와 꼭 같은 병에 걸렸지 뭡니까. 약 5-6년 전에 속이 몹시 쓰려서 두 군데서 내시경 검사결과 신경성 위염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마음을 편안히 하라고 권유하더군요.
그러나 아이 둘을 가진 여성 근로자가 어디 그리 맘 편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 위염은 위암으로 잘 발전되지 않는다는 어리석은 말을 믿고 - 몇 년 전부터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통증에 위장약을 복용하며 통증을 가라앉히곤 했지요. 그 횟수가 점점 늘어날수록 약국의 약의 복용 횟수만 늘리고 병원을 가지를 않았죠. 설마하면서. 그러다 어느 날 혹시 하는 불안감을 갖다가도 너무 스스로 예민하다고 치부 해 버렸고요.
그러다 올해 4월 중순 경 새벽에 평소와는 다른 극심한 고통에 약을 먹어도 가라앉지 않자 이제는 병원을 가보아서 도대체 이 통증의 원인이나 알고자 휴가를 제출하고 검사를 받았더니 당장 입원하라고 어떻게 이 상태가 되도록 견뎠냐는 의사의 힐책에 – 그 당시 상태는 위장 모두 천공으로 출혈중 이었음 - 바빠서라는 한마디로 답변을 했죠.
그래도 그때까지는 그 놈인 줄 몰랐습니다. 조직검사 나올 때까지 약 5일정도 - 참고로 자체 조직검사 불가 외부수주 - 입원하며 물 같은 미음만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희희낙낙 했죠. 별거 아닐 거라고 드디어 검사결과 '악성 종양'이라는 진단서를 주면서 당장 큰 병원 가서 수술하라고 하더군요.
더 바보 같은 나의 질문은 "암인가요?"였습니다. 의사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힐끗 쳐다보더군요. 악성 종양이 암이라는 사실을 모를 만큼 무식했던 거죠. 저도 왠만큼 고등교육 받았는데 ... 퇴원 후 집에서 조직검사 결과표 - 모두 꼬부랑글씨 - 를 해석하니 악성 신생물이 1cm정도 자라고 있으며 통칭 이것을 암이라 칭한다 하더군요. 윽! 그 기분.
아마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겁니다. 그러나 순간 우습더군요. 무슨 소설 속의 이야기처럼 드디어 내가 비운의 주인공이 되었구나. 초기니까 이까짓 거 싹뚝 잘라내고 당장 출근해야지. 간이 덜컥하던 기분도 잠시 어머님께 신경 쓰시지 말라고 이까지꺼 잘라내면 그만이라고 큰소리 탕탕 쳤죠. 물론 우리가족 그 누구도 내 앞에서 한숨을 쉬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근심 어린 표정을 지거나 과한 위로를 하거나 하지 않죠. 왜냐면 제가 무지무지 싫어하거든요. 환자 취급한다고.
퇴원후 병원을 결정했습니다. 제가 사는 곳은 울산이라 서울은 너무 멀고 그냥 가까운 부산에서 수술을 하기로 하고 담당의사에게 진료의뢰서 등을 제출하고, 다시 일주일 후 입원하기로 했습니다. 의사는 조기 위암이니 너무 걱정 말라면서 위로하더군요. 사실 마음 속으론 아무 걱정도 안 했는데. 직장에 휴가원을 제출하고 내시경 검사 받고 입원하고 다시 일주일을 기다려 드디어 역사적인 수술을 하였습니다.
병원에서 수술을 기다리는 일주일 동안 아무 생각이 없었죠. 암이란 놈에 대한 공포도 남들보다 좀 빨리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단지 잘 달리던 기차가 예고도 없이 탈선한 느낌에 화가 좀 났을 뿐이었죠. 병동 간호사들이 저보고 너무 담담해한다고 신기해하더군요. 글쎄 뭐랄까. 그 당시 저는 오직 한가지에 집착해 있었으므로 아무 것도 나의 앞길을 방해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죠. 올해 연말쯤 미국에서 공부를 할려고 준비 중이었으니까요. 오직 제 머리 속에는 얼른 수술하고 정상적인 생활과 그리고 계획했던 공부를 해야 한다는 믿음 뿐이었죠. 수술날 저녁 피마자기름인가 뭔가를 먹고 밤새 화장실 들락날락 물론 며칠 째 굶어 나올 것도 없는데 인간의 내장엔 뭔가 그리도 가득 찾는지.
드디어 수술 침대가 오고 이러저러 처치 끝내고 수술실에 입성 - 사실 전 수술을 세 번한 유 경험자라서(제왕절개로 아이 셋 분만 - 위염 진단 받고 내친 김에 한 명 더 얻었음) 전혀 이상하거나 무섭거나 하진 않았죠. 수술대에 묶는 간호사가 너무 엄숙해 보여서 한마디 했죠 "저 완전히 새 됐네요" 그러다 꿈나라로 해매다 눈 뜨니 병실, 걱정스런 가족들의 얼굴이 보이고 밀려드는 통증, 이제 한고비 넘겼구나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는데 수술후의 통증은 제왕절개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었습니다. 별로 아프진 않았었죠. 많이 아프면 어쩌나 했던 것이 기우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약 20여일을 입원하고 퇴원하면서 1차 항암 치료 받고 귀가했습니다. 그런데 구토나 뭐 그런 것이 극심하다던데 전 아무런 느낌이 없었습니다. 그런 체질도 있다고 하더군요. 약발이 잘 받는다는 체질, 어쨋거나 항암제의 후유증에는 시달리지 않았죠. 적어도 1차에서는 그런데 입원 중에 전 조기 위암인줄만 알고 뭐든지 물어보자는 어머니의 말씀을 일축하고 일체 의사에게 물어보기가 싫어졌습니다.
자기들이 어련히 알아서 할거라고 생각했죠. 그러나, 용감하신 우리의 어머니 - 사실 어머닌 우리 형제들 아버지들이 번갈아 가며 병원생활을 하신 유 경험자이셔서 젊고 소위 배웠다는 우리보다 의학적 지식이 풍부하시며 병원의 돌아가는 형국도 어느 정도 아시므로 - 레지를 붙잡고 대충 물어보니 위를 10분지 9를 잘라 내었으며 암 발생부위가 식도와 바로 붙어있어 하부 쪽은 전이가 안되어도 소장과 절개된 부위를 잇기 위해서 모두 잘라낼 수 밖에 없었다고 하더라며 애써 태연한 척 하시더군요. 사실 저도 놀랐습니다.
아! 조기 위암이 아니고 어느 정도 진행된 거구나. 그래도 낙관적인 것은 소위 그냥 열었다 닫은건 아니니까 아직 죽진 않겠구나 라는 생각뿐이었죠. 그때까지도 전 상황파악이 안된 거죠. 아니면 스스로 믿기 싫었던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그러나 우리네 의사들이 지들만 쏼라솰라 해대면서 환자에게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사실 환자들도 뭘 물어봐야 하는지 조차 모르고 전 후자의 경우였습니다. 이후 습득한 정보에 의하면 위암이라도 다 같은 위암이 아닌데....
대부분 그렇듯 수술 - 항암치료 - 그리고 대체요법을 선택하게 되죠. 저도 많이 못 먹으니 식사, 식이요법 또 좋다는 것들을 구해야 하는데 당장을 갈피가 잡기 어렵더라구요. 물론 예전에 아버지께서 투병하실 때 어머니께서 이것 저것 사다 나르시던 것이 떠오르긴 했지만 막상 이 모든 결정을 저 혼자하고 판단하고 또 앞으로 이놈과 싸워 나가야 한다니 좀 버겁게 느껴 지더라구요. 하지만 전 한가지 결심한 것은 이것저것에 절대 현혹되지 않고 두 서너 가지만 선택해서 지속적으로 하리라 그리고 쓸데없이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시간, 돈, 기운을 낭비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죠.
2차 항암제 투여가 잡혀서 수술결과를 삼성병원에서 한번 검토 해보고자 병원을 방문하였습니다. 물론 그 전에 동생 - 동생은 저 땜에 5년 만에 미국에서 귀국하여 담당의사와 저의 병에 관해서 모든걸 알아보았음 - 이 의사와 상담한 후 약간 심각해 하는 눈치가 보였는데 말을 해주지 않았죠. 전 삼성 병원에서 그 의사가 정말 객관적으로 의사의 소견을 말해주더군요. 정확히는 모르지만 수술처치 결과로 봐서 당신은 위암 3기이며 5년 생존율 40%, 뭐 임파절 몇 개에 암세포가 발견되고 임파절 42개중 몇 개를 잘라내고 갑자기 띵하더라고요.
장난이 아니구나! 전문 용어라서 동생이 이것 저것 물어보며 위암 환자의 경우 일반적으로 임파절에서 암세포가 발견되니 아직 다른 데로 전이된 건 아니다 그러나 아무도 알 수 없다.
항암치료는 힘든 것이니 가까운 곳에서 받아라. 우리 병원에선 더 해 줄 것이 없다가 답변이었죠. 처음으로 제가 암 진단을 받고 정말 처음으로 그 병원 대기실에서 눈물을 엄청 흘렸습니다. 죽는 것이 두려워서도, 앞으로의 투병생활이 겁나서도 아닌 이 현실을 오직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서만 감당해야 되고 부모 형제가 있지만 최후의 그 순간 까지 나를 책임져줄 아무도 없다는 사실(3년 전 남편과는 헤어졌음, 그래서 실명으로 글을 쓰지 않았음)에 절절한 외로움으로 그간 참아왔던 그 모든 것이 일시에 폭발하는 것 같았죠. 정말 싫더라구요.
이런 감정으로 울거나 신세 한탄하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는데 저도 나약한 인간이었던 것입니다. 동생과 그렇게 한참을 울고 동생이 자기가 책임 질거니까 절대로 혼자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고 간곡한 위로를 받아들이고 겨우 감정 정리를 하였죠. 여기서 굴복할 수 없다고,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다고 결심했죠. 일어서리라 이제 신이 있다면 내게서 가져갈 건 다 가져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마지막은 역시 생명 아닙니까? 그걸 잃는 것이 모든걸 잃는 것을 의미하니 이젠 내게 남아있는 것은 오르는 길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더 이상 내려갈 데가 없는 거죠. 그리고 구체적인 투병생활로 접어들었습니다.
이 글은 2021년 10월 작성 시점의 정보입니다. 치료 기준·급여 정보는 바뀌었을 수 있으니, 진료와 치료 결정은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