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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위암 3기말] ⑤ 다시 단양에서의 생활

2021.09.17 · 암스쿨

 다시 단양에서의 생활

아무튼 다시 단양으로 내려온 뒤에도 항암제의 후유증에 의한 고통이 너무 심해 몸은 더 허약해져 가는 것 같았다. 그래도 앞서 간략히 소개한 나름의 치료프로그램은 계속 시행했다.

현미잡곡밥과 몇 안 되는 반찬은 모두 유기농 재배된 것들을 썼다. 특히 반찬 가운데 무, 멸치, 콩 등 몇 가지 몸에 좋다고 판단되는 그리고 꼭 필요한 영양소를 가진 것들은 빼지 않고 골고루 먹었다. 가령 무는 그야말로 소화제 그 자체인 식품일뿐더러 대표적인 항암식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부산대학교 연구팀 등에서 항암작용이 매우 뛰어나다는 논문이 발표됐고 일본 북한학계에서도 잇따라 같은 내용의 연구결과가 나왔다. 책을 읽을 때나 심심할 때 무를 한 두 조각 베어 씹으면 군것질로도 괜찮았다. 항암식품이란 말을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무가 너무 맛있었다. 콩도 볶아 먹었다. 수술한 사람은 세포의 바른 생성과 원기 회복을 위해 육류(특히 개고기)를 많이 먹어야 한다고 의사선생님이 말했으나 난 그 당시 육식을 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대신 콩을 많이 먹었다. 동물성 단백질 대신에 식물성 단백질이라도 섭취해야 했던 것이다. 내가 즐겨먹은 콩은 한약재로 서리태라고 불리는 검정콩이었다.

밥이건 뭐건 한번 입에 들어온 것은 꼭 100번 이상을 씹어 입안에서 완벽하게 죽을 만들어 삼켰다. 식사시간은 기본이 한 시간이었다. 위장을 잘라내 3분의 1 공기도 안 되는 식사였지만 꼭꼭 씹어 먹다 보니 그렇게 됐다. 여전히 하루에 5끼 정도의 식사를 해야 했다.

병원에서 주는 약은 따로 없었다. 단양에서의 생활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 가운데 하나가 약차의 음용이었다. 앞서 언급한대로 황봉실 선생님이 저술한 '기적의 암 치료법' 제1권에 소개된 약차를 만들어 처방대로 마셨다.

약차 만드는 법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소개하겠으나 서점에서 책을 구해다 보면 좋을 것 같다. 그 책에는 식양 법이라 해서 음식으로 암을 다스리는 법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는데 나의 경우 많은 참고가 됐고 그분의 저작 내용에 대해 체험자의 한 사람으로서 100% 확신한다.

운동도 꾸준히 했다. 매일 산 아래까지 한두 번 다녀오는 것 이외에 수시로 마사지며 지압 등을 했다. 암 세포가 남아있다면 혈액 순환을 잘 되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혈행을 순조롭게 하는 체조도 열심히 했다.

역시 매일 밤 명상과 함께 "내일 아침 잠에서 깨면 나는 오늘보다 훨씬 건강해져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자기암시를 줬으며(거의 자기최면을 걸었다) 암세포가 죽어 없어지는 상상을 확실한 이미지를 가지고 해가며 잠이 들었다.

2, 3주 지나면서 항암제로 황폐화된 몸은 원기를 다소 회복했다. 절에 있는 동안에는 적어도 민둥 머리에 별 신경이 안 쓰였다. 수술 받은 자리는 신기하게도 잘 아물었다. 큰 흉터가 남지 않았다.

3차 항암제 투여

다시 8월말, 서울에 가서 3차 항암제를 맞아야 할 때가 됐다. 정말 넌더리가 났고 두려움이 앞섰다. 이 즈음 화학요법을 통한 치료가 별 효과가 없다는 내용의 책들을 여러 권 접했다. 일본의 곤도 마코토(부정확)라는 의사가 쓴 '암치료 절대로 하지마라'(부정확 : 내가 암치료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은 주변사람들의 소개로 참으로 여러 사람들이 찾아왔다. 암과 관련된 서적들을 엄청 사 모았는데 이렇게 찾아온 이들에게 체험담을 들려주면서 책들을 꽤 여러 권씩 나눠주다 보니 지금은 주요한 책들이 모두 사라졌다. 그래서 책 제목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라는 책도 그 중의 하나였다.

책 내용의 골자는 지금까지 개발된 항암제는 암치료제가 아니라 '사람 잡는' 약이라는 것이다. 암세포뿐만 아니라 정상세포까지 함께 손상시켜 몸이 망가지고 항암제가 오히려 암치료를 방해한다는 내용이다. 일본에서의 얘기지만 보건당국과 제약회사, 의사 등 3개의 카르텔이 빚어낸 비극의 약이라는 주장이다. 내가 항암제를 맞아보니 그의 주장이 맞는 것 같다.

여하튼 항암제를 그만 맞아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그러나 어머니나 아내 등 주변사람들이 문제였다. 환자가 병원을 안 가겠다니 무슨 말이냐며 막무가내로 병원으로 떠밀었다. 나름대로 이유를 설명했으나 소용없었다. 할 수 없이 서울로 올라와 입원을 했고 3차 항암제 투여가 시작됐다. 항암제는 정말 맞을수록 사람을 더 지치게 한다.

2차 때와 마찬가지로 1주일 내내 링거에 점적주사를 맞는 3차 항암제는 그로기 상태를 지나 완전 넉 다운 상태로 만들었다. 구토와 설사는 여전했고 입안은 완전히 헐었다. 항문은 잦은 설사로 괄약근의 힘이 없어져 탈항 상태가 됐다. 단양에서의 자연요법과 식이요법 등으로 다소나마 회복된 몸은 다시 완전히 망가진 것 같았다. 몸무게가 46kg으로 줄었다.

내 방식대로 치료하겠다

퇴원 후 강력하게 선언했다. 더 이상 항암제를 맞지 않겠다고. 이제부터는 내 방식대로 스스로 치료하겠다고. 이 같은 선언의 배경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항암치료를 해 봤자 생존확률이 10% 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통계에 의한 확률이지만 당사자로선 그 10%의 확률이 너무 허망한 것이었다. 그 정도의 확률에 목숨 걸고 그 험악한 항암제를 맞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하루를 살더라도 항암제의 고통 없이 사는 '삶의 질'을 택하고 싶었다. 3차 항암제를 맞으면서 레지던트에게 물었다. 항암제를 안 맞을 경우 어떻게 되느냐고. "통계는 없지만 아무래도 죽을 확률이 더 높을 것"이라는 내용의 답을 들었다. 그러나 죽을 확률이 90% 이상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다른 하나는 자연요법에 대한 확신이었다. 내 몸의 상태와 내가 처한 환경에 맞는 치병 프로그램을 만들어 실천해 나가면 아무래도 생존확률이 10%보다야 높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사실 100% 확신이 있었다. 물론 지긋지긋한 항암제로부터의 도피도 이 같은 결정의 배경이 됐다.

회사의 규정상 병가가 3개월이었기 때문에 9월초 휴직계를 내러 회사에 갔다. 다행히 회사에서 병가를 6개월로 연장해 주셨다.

이 글은 2021년 9월 작성 시점의 정보입니다. 치료 기준·급여 정보는 바뀌었을 수 있으니, 진료와 치료 결정은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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