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위암 3기말] ② 아! 항암제!
2021.09.17 · 암스쿨
아! 항암제
수술한 지 3주가 지나자 항암제를 주사한다고 했다. 나중에 항암제를 더 맞든 말든 일단 항암제를 한 번 맞고 나면 퇴원할 수 있다니 정말 기운이 솟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항암제는 점적 주사(링거를 꽂아 약을 한 방울씩 투여하는 것)로 투여됐다. 일주일 동안 계속 링거를 꽂고 한 방울씩 약을 투여하는 일은 정말 끔찍했다.
투약 3일째 되던 날부터 심한 구역질과 함께 온몸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링거 항암제 이외에 빨간 주사와 파란주사(약 이름은 모른다)를 맞고 나서는 거의 그로기 상태가 됐다.
심한 구토증세로 그나마 죽도 먹을 수 없게 됐다. 항암제가 하도 독해 하루에도 수차례 설사를 해야 했다. 항암제가 독하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독할 줄 몰랐다. 얼마나 몸서리쳐지는 고통이었는지 암세포 때문이 아니라 항암제 때문에 죽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수술 전 내 몸무게는 67∼68kg 가량 됐다. 수술 후 항암제를 한 번 맞고 난 다음 몸무게는 52kg정도로 줄었다. 항암제 투여가 끝나자 곧바로 퇴원했다. 얘기가 나온 김에 항암제의 독에 대한 체험을 적어볼까 한다.
모든 암에 같은 항암제를 쓰지는 않는다. 나의 경우 위암3기 말인데다 전이가 된 상태여서 독한 약을 썼는지, 아니면 체질적으로 나에게 안 맞는 약인지 모르겠으나 얼마나 지독했는지 ‘항암제는 약이 아니고 독’이라는 생각을 지금도 굳건히 가지고 있다. 항암제를 가지고 인체 독 저항력 실험을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앞서 얘기한 대로 나의 경우 항암제 투약은 1주일간에 걸친 점적 주사였다. 1주일 내내 링거 주사기를 꽂고 사는 것도 말할 수 없이 불편하고 불유쾌했지만 사람을 완전히 그로기상태로 만드는 지독한 독성 때문에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우선 항암제 투여 하루쯤 지나면 밥맛이 완전히 사라진다. 식욕은 없어졌지만 주변의 성화와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억지로 입에 얼마 안 되는 음식을 구겨 넣게 되는데 사흘 쯤 지나면서부터는 금새 토하고 만다. 그리고 먹은 것도 없는데 수시로 설사를 한다. 하도 설사를 해서 탈항(치질의 일종)이 생겼다.
아주 조금씩, 예를 들어 포도 한 송이를 오래 씹거나 삶은 감자를 오물거려 삼켜도 보지만 그것도 구역질 때문에 못 먹는다. 입안과 입술은 모두 헐어버렸다. 칫솔질도 못할 상태가 돼 버린다. 이런 상태가 10일 내지 2주일가량 지속된다. 항암제를 맞은 지 3주째 접어들면서부터는 다소나마 회복기에 접어든다. 그러나 5주째에는 다시 항암제를 맞아야 하기 때문에 더 심한 그로기 상태가 반복적으로 지속된다.
항암제를 투여하고 독이 지속되는 기간에는 손톱 발톱도 자라지 않는다. 견디다 못해 12차례를 맞으라는 항암제를 모두 3차례만 맞고 거부했는데 한동안 모든 손발톱에 3개의 주름 띠가 생기기도 했다. 항암제를 투여하는 기간 동안 손발톱이 자라지 않아 그 흔적이 주름 띠로 나타난 것이다. 수술 전 67∼68kg이던 몸무게가 수술과 첫 항암제 이후 52kg 정도로 줄더니 두 번째 항암제를 맞고 세 번째 항암제를 맞자 46kg 가량으로 빠졌다. 불과 서너 달 새에 20kg이나 빠진 것이다.
무릎을 세우면 정강이뼈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뼈에 살가죽만 달랑 입혀놓은 듯 한 소말리아식 몸매가 됐다. 거기다 피부나 얼마 안 되는 살점들은 탄력성을 잃어 노인들 살처럼 늘어졌다. 가령 허벅지 살을 꾹 눌렀다가 놓으면 전처럼 바로 원상 복구되는 게 아니라 눌려진 대로 그대로 있는 것이다.
항암제의 독 때문에 몸뿐만 아니라 정신도 황폐해져 가게 된다. 까무룩 까무룩 정신이 혼미해지고 생에 대한 의욕을 상실케 된다. 특히 머리털이 빠지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에 대한 존엄성과 자긍심을 완전히 잃어버리도록 만든다. 거울 속에는 전혀 낯선 인간이 들어있다. 머리칼도 없고 눈썹도, 코털도 없는 외계인 같은 아니 외계인보다 못한 놈이다. (외계인들이여 기분 나빠하지 말라) 모자를 써 보고 가발을 끼워보지만 처참한 건 마찬가지다. 그놈의 항암제, 지금 생각해도 넌더리가 난다.
병원에서의 생활
우리나라 병원이란 데가 얼마나 있을 곳이 못 되는지는 한 번이라도 입원해 본 경험이 있다면 모두 동감할 것이다. 난 우리나라 병원이 병을 치료하는 곳이라기보다 병을 키우고, 없던 병도 생기게 하는 곳은 아닌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무뚝뚝하고 불친절하고 위압적인 의사 간호사, 돈만 밝히는 원무과 관계자들, 음울한 분위기, 감옥이나 다름없는 환자의 생활환경 등등... (물론 실제로는 병원이 많은 환자들의 병을 낫게 해주고 있다.)
나를 간호하기 위해 병원에서 살아야 했던 아내와 어머님은 더 괴롭고 힘들었을 것이다. 아내는 잘나가던 직장마저 그만뒀다. 매일 곁에서 기도(아내는 카톨릭 신자였다)를 했다. 어머님은 부처님(어머님은 불교신자였다)의 가호를 빌었을 것이다. 불편한 보호자용 간이침대에서 눈도 제대로 못 붙이며 제대로 못 먹고 곁에 있었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연일 문병을 왔다. 평소에 관계가 소원했던 사람들도 병실을 찾았다. 고마운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심심할 거라며 만화책과 무협지 등을 싸 들고 온 동료도 있었고 병 회복에 좋다며 수지침과 수지뜸을 들고 와 괴롭힌(?) 선배 부인도 있었다. 수술로 배가 아파 죽을 지경인데 위문공연이랍시고 후배들이 와서 웃기는 바람에 수술자리가 다시 터질 뻔한 기억도 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한번 감사드린다.
그 와중에도 틈만 나면 암이나 건강과 관련한 서적들을 탐독했다. 고시 공부하듯 빨간 줄까지 그어 가며. 책들은 레지던트가 말한 위암 3기말이라는 나의 상태와 생존확률 10% 등을 확인시켜 주었다.
항암제를 맞고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치료해도 생존율이 10%밖에 안 된다는 사실은 나로 하여금 다른 방법을 찾도록 만들었다. 암이나 건강과 관련한 많은 서적들은 당시의 암 치료가 한계에 부닥치고 있다고 꼬집고 있었다. 심지어 병원치료가 암 환자를 죽음으로 이끈다고 극언하는 책들도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요법 같은 대체의학 등을 소개하는 내용들도 있었다. 나는 환자 스스로 병원치료를 거부하거나 병원에서 치료를 포기한 사람들이 제3의 요법으로 완치됐다는 일부 책의 주장에 솔깃해졌다. 이쯤에서 두 가지 정도 짚어둘 것이 있다.
하나는 건강 검진을 과신하지 말라는 점이다. 나의 경우 30세 이후 매년 정밀검진(영동 세브란스가 아닌 다른 의료기관)을 받았는데도 위궤양 진단 정도밖에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암이 진행된 지 6, 7년이나 됐지만 그만큼 쉽게 발견이 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래도 건강검진을 정기적으로 받은 것이 뒤늦게나마 발견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됐다는 점은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다른 하나는 암 보장 보험 하나 정도는 들어둘만 하다는 점이다. 나의 경우 결혼과 함께 S생명의 새생활 암보험에 들어두었던 관계로 경제적으로 큰 도움을 받았다.
털이란 털은 다 빠지고
7월 초 퇴원하자마자 충북 단양에 있는 한적한 절로 갔다. 요양을 하기 위해서다. 단양팔경 가운데 하나인 상선암에 위치한 조그만 암자였다. 어머님이 다니시는 절이고 나도 자주 와봐서 스님과도 잘 안다. 지긋지긋한 병원을 벗어났다는 안도감이 우선 좋았다. 맑은 공기, 수려한 자연, 한가롭고 여유로움, 고요함이 좋았다. 항암제의 지독한 기운들도 점차 몸에서 빠져 나가는 듯했다.
그러나 퇴원한 지 1주일 쯤 지나면서부터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다. 자고 나면 배갯닛에 빠진 머리카락이 수북했다. 머리를 한 번 감을 때마다 한 웅큼씩 빠졌다. 정말 황당했다. 내가 정상의 몸이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도록 실감나게 만들었다. "항암제 때문에 며칠 있으면 머리가 빠질 것"이라던 의사의 말에 설마했는데 현실로 나타났다. 초췌하고 머리카락도 없는 거울 속의 나를 들여다보노라면 내가 중환자라는 사실을 다시금 인식하게 됐고 의사의 말대로 6개월 내에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배갯닛에 쌓인 머리카락을 떼노라면 눈물이 쏟아졌다. 두 눈에 넣어두고 싶은 귀여운 두 딸들의 모습도 밟혔다.
다행이 요양을 하던 곳이 절이어서 머리가 빠져도 크게 표 나지는 않았다. 이 무렵만 해도 머리가 다 빠지진 않았는데 듬성듬성 있는 게 보기 싫어 스님께 부탁해 면도날로 아주 밀어버렸다. 나중 얘기지만 두 번째 항암제를 맞고 나선 아예 겨드랑이나 사타구니의 털, 심지어 눈썹, 코털까지 다 빠졌다. 난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절이 좋다. 무엇보다 고요해서 좋다. 머리털이 빠져버린 데서 오는 정체성의 상실과 황당함을 극복하는 데는 참선이 특효였다.
이 글은 2021년 9월 작성 시점의 정보입니다. 치료 기준·급여 정보는 바뀌었을 수 있으니, 진료와 치료 결정은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