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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위암 3기말] ① 10%의 생존율... 난 그 10%에 든다고 믿어버렸다

2021.09.16 · 암스쿨

"내가 위암 진단을 받은 것은 5년 전이었다."

일반적인 분류로 위암3기 말쯤에 해당된다는 것이었다. 암이 이미 6, 7년 정도 진행됐으며 수술을 하고 1년간 항암제를 투여해야 된다고 했다. 그래도 살아날 가능성(5년 생존)은 10%밖에 안 된다고 했다.

6월 10일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항암제는 3차례만 맞고 그만뒀다. 10% 밖에 안 되는 확률에 생명을 걸기엔 현대의학이 너무 못 미더웠다. 수술 후 3차례 항암제 치료 후에는 혼자 치유프로그램을 마련해 투병했다.

그리고 만 5년이 지난 시점에서의 건강검진에서 아무 이상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암의 완치 여부는 5년 생존여부로 따진다고 한다. 사실 수술 받기 전보다 건강 상태가 훨씬 좋다. 지금부터 5년 동안 내가 암과 싸워온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암 선고를 받은 이후의 투병기를 시간대별로 정리했다. 이 글은 순전히 개인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글이다. 나와 유사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나의 치병 사례가 암에 걸린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돼 나와 같이 하면 누구나 나처럼 치유될 것이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다.

나의 투병방법이 유효하다고 의학적으로 검증된 것도 아니다. 나는 의사도 아니고 단지 한 때 암 환자였다가 치유된 사람일 뿐이다. 이 글을 단지 참고로 하라는 뜻이다. 이 시간에도 고통 받고 있는 암 환자와 가족들에게 조그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33살에 위암3기라니

영동세브란스병원 건강검진센터 상담실. 안경 너머로 나를 쏘아보며 의사가 물었다. 보름 전 받았던 종합검진결과를 통보 받는 자리였다.

"평소 위가 많이 아프지 않았습니까."

"속이 자주 쓰리고 아팠습니다."

나는 대답을 하며 의사가 들고 있는 검진기록을 넘겨다보았다. CANCER라는 단어가 한 눈에 들어왔다. 이 단어가 우리말로 암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내가 암에 걸렸다는 건지 걸릴 수도 있다는 건지, 암 검사를 해봐야 한다는 건지 알 수는 없었다. 의사는 명확히 암에 걸렸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직감이라는 게 있다. 암이구나 싶었다.

"위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당장 수술을 해야 하니까 입원부터 하세요."

난 자세한 것을 묻지 않았다. 험한 말을 들을까 봐 겁이 났기 때문이다. 도망치듯 회사로 돌아와 "위가 안 좋아 수술을 하게 됐다. 병원에 입원을 해야 하니까 병가를 내달라"고 요청하고 회사(서울 삼성동 무역센터) 지하에 있던 서울문고에 들렀다. 그 곳에서 암과 관련된 책 몇 권을 샀다. 사실 암이 무서운 병이라는 것 외에 암에 대해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는 상태였다.

내 나이 서른세 살 때였다. 결혼한 지 만 6년 가까이 된 아내와 6살, 4살 난 딸들이 있었다. 불과 1년 전에 홀로되신, 아직 환갑도 못 넘긴 어머님도 계셨다.

6개월 내에 죽을 수도 있다

건강검진 당시 위내시경 검사에서 암이 확실시됐던 모양이다. 이미 그 때 조직검사를 했다고 들었다. 검진결과가 나온 사흘 후 병원에 입원을 했고 6월 10일로 수술 날짜가 잡혔다. 수술 받기 전에 맛있는 것 실컷 먹으라는 의사의 말이 사형선고처럼 들렸다. 성남의 남한산성까지 가 최후의 만찬으로 닭도리탕을 먹었다. 오랜 동안 기억에 남을 만치 맛이 있어서 지금도 가끔 즐긴다.

수술을 기다리는 며칠 동안 암과 관련된 서적들을 구해지는 대로 몇 권 사서 읽었다. 암이 무서운 병이라는 것만 알았지 암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조그마한 정보라도 갖고 싶었던 것이다. 이 때와 수술 후에 틈나는 대로 읽었던 암 또는 건강관련 서적들은 후일 치병을 하는 동안 많은 도움이 됐다. 암 또는 건강관련 서적들만 집안 서가의 한 벽면을 가득 차지할 정도로 많이 구해 읽었다.

수술이라곤 난생 처음 받는 터였으나 마음은 비교적 평온했다. 만에 하나 잘못될 경우를 생각해 수술에 들어가기 전 아이들 얼굴을 한 번 찬찬히 뜯어봤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마취제로 인해 까무러지는 의식 속에서도 아이들의 얼굴이 선명했다.

아내와 어머님의 눈물바다 속에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의사가 수술로 적출해 아내에게 보여준 암 덩어리는 500원짜리 동전보다 더 큰 타원형이었다고 후일 들었다. 의사는 내 위장의 75%가량을 잘라냈다고 말했다.

참고로 영동세브란스 병원의 수술 실력은 상당한 수준이었던 것 같다. 수술에 따른 부작용은 전혀 없었고 5년이 지난 지금 자세히 보지 않으면 수술 흔적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다. 내장을 다 꺼내 그 중 일부를 잘라내고 다시 집어넣어 꿰맸을 테니 수술자리와 뱃속의 통증이 여간 심한 게 아니었다. 이틀 동안 마약성분이 포함됐다는 진통제 주사를 맞고 견뎌야 했다.

다행이 수술 후 경과가 좋아 닷새째 무렵 가스(방귀)를 내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음과 죽을 먹을 수 있게 됐다. 위를 잘라내 대여섯 숟가락만 먹으면 음식물이 목구멍까지 그득한 느낌이었다. 수술자리는 빠른 속도로 아물었다.

어쨌든 일단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으니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지 궁금했다. 언제 쯤 퇴원할 수 있는 건지, 수술로 치료가 끝난 건지 등등. 초기 암 정도쯤 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던 나의 최대 관심사는 8월 중순경으로 예정됐던 중국연수(당시 회사에서 1년간 북경에 있는 대학에 연수를 보내주기로 돼 있었다)를 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담당의사는 이런 질문에 언제나 말을 돌려버리거나 어물거렸다. 내가 위암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다 아는데도 의사들은 수술 후에도 암이란 말조차 사용하지 않으려고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환자가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을까 봐 숨기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나는 아내에게 내 암의 상태가 어떤 것이었는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지 등에 대해 최대한 자세히 알아오라고 부탁했다. 이런 얘기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지만, 아내는 봉투에 얼마 간의 촌지를 넣어 담당 레지던트에게 전해주고 나서야 비교적 상세한 설명을 들었다고 했다.

레지던트로부터 전해들은 얘기를 종합하면 이렇다.

"암 종의 상태로 보아 발암(암에 처음 걸린) 시기는 6, 7년 전쯤으로 추정된다. 임상학적인 분류를 하면 위암 3기 말쯤에 해당된다. 수술을 하면서 임파절에 전이가 됐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임파절을 상당부분 적출해냈다. 암이 임파절을 통해 전이되므로 다른 곳에도 이미 전이됐을 가능성을 배제 못한다. 의학적으로 위암 3기 말의 5년 생존률은 10%쯤 된다. 그러나 전이가 됐다면 나쁜 경우 6개월 이내에 죽을 수도 있다."

아내는 눈물을 찔끔거리며 이 말들을 전해줬다. 그러나 난 놀라지도, 슬퍼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아니었다. 뭐랄까 좀 묘한 기분이었다. 6개월 이내에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은 다소 의외였고 충격이었으나 설마 하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또 생존 확률 10%에 내가 틀림없이 포함될 것이란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안했다.

이 얘기를 왜 하느냐 하면 암이란 말에 너무 충격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서다. 암 환자들의 경우 자칫하면 정신적 충격이 삶에 대한 포기 등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난 이후부터 생존율이 10% 이하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까지 난 의도적으로 충격을 받지 않으려고, 태연 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10%의 생존율은 낮은 게 아니다. 난 당연히 그 10%에 든다고 믿어버렸다.

이 글은 2021년 9월 작성 시점의 정보입니다. 치료 기준·급여 정보는 바뀌었을 수 있으니, 진료와 치료 결정은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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