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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소암3기 암투병극복기] ① 마음 준비하라던 병원, 항암 4개월 만에 "추가 항암 필요없어요!"

2020.09.17 · 암스쿨

“난소암 3기입니다!”
“마음 준비하세요. 수간호사의 사망예고 통보”

지난해 4월 어느 날, 유방이 저려서 서울 OO산부인과에 검진차 들렸다가 우연히 해본 난소초음파검사, 담당의는 심각한 얼굴로 “급히 삼성병원을 예약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얼마 후 OO병원 산부인과병동 3인실, 서울 OO병원 이OO교수가 사복을 한 수간호사, 젊은 의사 둘을 대동하고 내 침상 앞으로 왔다. 긴장한 나는 없는 기운에도 상반신을 벌떡 일으켰고, 침상 옆에 넋 없이 앉아있던 남편도 자동으로 일어섰다.

잠시 우리부부를 바라보던 교수님, 지체 없이 말을 했다. 수술해보니 종양이 ~~부위까지 침범했기에 3기입니다.

“3기입니다!”

순간, 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들리지 않고 무성영화 속 화면처럼 입술움직임만 보이기 시작했다. 뇌속 피가 일시에 빠져나갔는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어지러웠다. 백지장처럼 빈 머릿속! 남편을 쳐다보았다. 하얗게 질려버린 얼굴. 의사에게 어떤 자비의 한마디라도 구걸하는 듯 교수입만 쳐다보는 남편. 그러나 담당교수는 굳은 얼굴로 일행을 몰고 타 병실로 사라졌다. 그제야 교수 꽁무니를 쫒아가려는 남편, 이내 간호사에게 제지당했다.

그들이 사라지고 나서야, 나는 남편을 향해 쓰러지며 나즈막히 중얼거렸다.
“나 3기래! 이제 가족들하고 밥한 번도 먹을 수 없는 거야?”

남편도 그들처럼, 빈위로의 말 한마디 못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나는 간호사, 의사들을 붙잡고 “수술 받으면 살 수 있는 거냐?”고 물었지만 건성으로라도 살 수 있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없고 오히려 더 바쁜 듯, 나를 피하기 급급해 하는 것 같았다. 나중에 설명해준다고 제지하던 수 간호사, 그 수 간호사가 병실에 왔다. 설명대신 남편을 데리고 나갔다.

궁금했던 나는 남편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응 간호 잘하라던데..."라고 어물거리던 남편. 

후에 알게 된 내용이었지만 수간호사는 복도 끝 조용한 곳으로 남편을 불러서 “보호자에게는 사실대로 이야기 해야겠습니다. 제가 25년간 환자들을 보아왔는데 아내에 대하여 마음의 준비를 하시기 바랍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설상가상, 당시 2년여간 나는 심한 불면증과 우울증, 변비, 발가락 물집 등으로 그야말로 자지 못하고, 싸지 못하고, 걷지 못하는 최악의 건강상태였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당시 남편도 마음속으로 그랬다고 한다.

“그 어렵다는 난소암 3기, 심한 불면증과 심한 변비, 중증의 우울증, 티눈으로 인한 보행불가 … 한 가지도 감당 못하겠는데, 참 가지가지 한다”고.....

나도 그럴 만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과 수면, 배변은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3대 요소라던데 말기 암에, 수면장애, 운동 불능, 변비까지 내가 생각해도 가지가지 하는 것 같았고 치료는 요원해 보였다.

"당신없으면 못산다!" 나를 울린 남편

이때부터였다. 남편의 핏속에 잠재되 있던 ‘끼’가 발동한것은... “이봐 해봤어?”라고 알려진 정주영 회장님의 현대근성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때는. 

젊은 시절, 현대건설에 입사, 중동사막에 나가면서 악바리 근성을 체득한 남편은 난관에 부닥치면 돌파력이 유달리 강했다. 집요한 노력으로 어려운 과제들을 해결하곤 하여 '해결사'라는 별명이 있던 남편이었다.

남편은 “말기 암은 성장이 빠르니, 우선은 수술을 최대한 빨리하고, 좋은 요양병원에 가서 뉴스타트에서 지도하는 자연치유요법들을 시행하자. 우선은 수술하기 전에 체력을 보강하기 위한 요양병원입원을 해서 체력과 면역력을 높여 수술후 회복에 대비하자! "라며 나를 산속 요양병원으로 데리고 들어가 입원시켰다. 비타민 D, 고가 영양제, 등 10여 일에 짧은 기간이었지만 하루의 낭비도 없이 남편의 프로그램은 계획성 있게 진행되었다. 산속을 싫어하던 나는 남편에게 투덜거렸다.

“너무 깊은 산속은 싫어! 음식도 싱거워서 맛이 없어”
“산책길에 뱀을 본사람 있다던데 산에 안 갈래!”
“1인실 아니면 잠이 안와~~”

남편은 어린아이같이 투정하는 나를 데리고, 1인실에서 같이 지내며 나의 ‘암 코치’ 역할을 시작했다. 남편이 옆에 있다는 생각에 덜 불안하고 든든했다. 남편은 자는 시간외에는 모두 암 공부를 했다. 자신이 먼저 잠들면, 코를 골아 내가 숙면에 들지 못할까봐 밖에 나가서 내가 잠드는 시간인 10시를 한 시간이나 지난 11시에야 조용히 들어와 내가 코고는 소리를 듣고서야 들어와 잤다. 

남편은 병원 측을 독려하여 수술을 최대한 앞당겼다. 말기암의 급속한 성장을 우려한 결과였다. 한번은 청평요양병원에서 둘이 산책을 하면서 남편이 느닷없이 고백을 했다.

“난 당신 없인 못산다! 날 위해 꼭 살아다오!”

난 그 소리에 흐느껴 울었다. 실제로 환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관심과 사랑, 그중에서도 남편의 사랑이다. 남편의 사랑이 치료의 근본이라고 생각한다. 간혹 아내를 요양병원에 두고 면회조차 뜸한 남편들을 본다.

남편들은 치료는 의사가 알아서 다 해주겠지. 나는 돈만 대주면 되지‘라고 생각하겠지만 의사가 5% 고치고, 가족의 사랑과 돌봄이 95%를 고친다고 생각하면 그럴 수 있을까? 결국 그 아내는 자존감을 상실하게 되고, 치료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2편에서 계속 

난소암 3기 암투병극복기 전문보기

이 글은 2020년 9월 작성 시점의 정보입니다. 치료 기준·급여 정보는 바뀌었을 수 있으니, 진료와 치료 결정은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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