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 백혈병 6년 차, 각종 부작용으로 고통 있지만 감사와 기쁨으로 살고 있어
2020.03.02 · 암스쿨
앎 멘토링학교 1기에서 6년째 만성 백혈병으로 투병 중인 한주리 씨가 세 번째 강사로 나섰다. 한주리 씨는 6년 동안 겪은 백혈병 증상과 항암 부작용에 대해 자세히 나눴다.
그는 암 발병 전까지 피곤한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전조 증상이 있지는 않았다며 말문을 열었다. “처음 만성 백혈병이라는 것을 들었을 때 병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아는 거라곤 각혈하다가 죽는 여주인공밖에 없었다”며 “백혈병에 대해 인터넷을 쳐봐도 모르겠고 글도 천차만별이고 처음에는 남편이 하자는 데로 했다”고 말했다.
백혈병이 발발한지 3년째 되던 해부터 그는 백혈병에 걸린 환자들을 상담해주는 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처음 진단받고 힘들어할 환우들에 대한 마음 때문에 시작하게 됐다. 그는 “환자마다 우왕좌왕하다가 1년이 간다. 처음 확진된 환자에게 상담봉사자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병원 이름보다는 병에 맞는 전문의를 만나야 한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고 당부했다.
백혈병에 대해 그는 “만성 백혈병은 1/3밖에 안 된다. 골수에서 유전자 세포가 어느 순간 돌연변이 암세포로 바뀐 것이다. 골수에서 돌연변이 암세포가 나오는 것이다. 골수가 망가진 것이다. 치료할 수 있는 것은 골수이식밖에 없다. 급성의 경우 생존의 위협 때문에 골수이식이 시급하다. 만성은 3년 두면 사망한다”며 “만성 백혈병은 고통이 너무 극심하고 삶의 질이 방에서 꼼짝도 못하는 처참한 환경이 된다. 불쌍한 신세가 된다. 재발되는 경우도 많다. 이에 반해 골수이식에 성공해서 정상적인 삶을 사는 사람도 있다”고 설명했다.
항암 약에 대해서는 “만성은 표적 항암 약들이 개발이 됐다. 골수에서 나오는 암세포를 골라서 죽이는 거다. 환자들은 매일 항암 약을 복용하고 있다. 나는 글리백이라는 항암 약을 복용 중”이라며 “약을 복용하며 심적으로 가장 힘든 것은 얼굴이 퉁퉁 붓는 것이다. 얼굴에 변형이 온다. 글리백은 90% 얼굴 눈, 볼이 부어오르고 피부가 얇아지고 하얘진다. 내장 기관이 얇아져 있다. 대장 천공이 무서워서 내시경을 못 받는 사람이 많다. 매년 대장 내시경 받는 것이 힘들다. 나도 선종, 용종이 계속 생겼다. 모든 환자가 이런 것은 아니다. 환자마다 다 다르다”고 했다.
이어 “피부가 얇아지니 돈까스도 입안이 얼얼해서 못 먹는다. 추위 더위를 심하게 타게 되고 다리에 쥐가 자주난다. 근육 경련이 일어나고 창자가 저리는 것처럼 구토할 때도 있다. 눈이 충혈 되고 핏줄이 터진다. 다른 약은 더 심각한 부작용이 있다. 폐에 물이 차고, 동맥이 막히기도 한다. 약도 멀쩡히 잘 듣다가 어느 순간 내성이 생겨 안 듣는 경우도 있고 다른 돌연변이 암세포가 생기기도 한다”며 “어느 날은 글리백을 4알을 복용했는데 머리가 돌고 구토가 심하게 왔다. 뇌졸중 증세처럼 쓰러져서 몸을 꼼짝도 못하게 뻗었다. 남편이 흔들어 깨워도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좀 진정이 되어 병원에 갔는데 약 부작용이라고 했다. 이후 3알로 줄였다. 지금은 그래서 그런지 생활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고 했다.
그는 이런 부작용은 환자들에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정작 중요한 것은 PCR 수치로 골수에서 나오는 돌연변이 암세포 수치를 말한다. 이 수치는 생존과 관련이 있다. 부작용은 삶의 질 문제다. 병원의 교수님은 이 수치만 본다. 확진되고 3개월 동안 약을 먹여 이 수치를 0.1 밑으로 떨어뜨려야 한다. 이게 안 떨어지면 위험하다. 치료가 어려워져 사망에 이르게 된다. 수치가 떨어진 환자들은 항암 약을 복용한다”며 “6개월에 한 번씩 암세포가 있는지 피를 뽑아 검사를 한다. 암수치가 5% 미만일 때 관해라고 하는데 이 상태가 6년 정도 가면 약을 끊는 임상에 참여할 건지 물어본다. 그런데 약을 끊었다가 많은 수가 재발을 하고 약에 내성이 생겨서 국내외 사망환자가 나와 대부분은 약을 끊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한주리 씨는 항암 부작용으로 장이 얇아져 설사 복통이 기본이고 수족냉증으로 종아리와 발가락 등이 너무 아파 두꺼운 양말만 신는다고 했다. 치과질환을 포함해 몸도 계속 약해지고 있지만 감사하며 기쁘게 살고 있는 비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주었다.
그는 21년 전부터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는 사건이 있었다고 했다. 결혼생활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내 인생이 왜 이렇게 꼬였나 한탄하며 매일 저녁마다 술을 먹으며 지냈다고 했다. 그는 이 시기에 대해 “신앙인이라고 하면서 망가지는 내 모습을 보며 마음이 초라했다. 내가 믿고 있는 하나님이 왜 이렇게 힘이 없나. 도대체 내가 뭘 믿고 살았나. 신앙에 대해 점검하는 시간이었다”며 그러다가 “어느 때 예수님이 사대성인 중 한명인 한 남자임이 새로워 보였다. 역사책, 위인전에 나왔던 남자, 목수의 아들, 30세 청년을 하나님으로 믿을 수 있나 생각이 들며 왜 이 남자 이름으로 기도를 하지란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계속 고민하면서 나랑 똑같은 사람이 하나님이라는 증거를 이 지구에 두셨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어령 교수의 말처럼 예수의 못 자국이 지성과 영성을 이어주는 코드가 됐다. 부활을 하셔서 부활체를 보니까 기독교가 탄생이 된 것이다. 이 사람이 하나님이라는 증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을 수 있도록 해주셔서 믿음을 가질 수 있구나 알게 됐다”면서 “예수님의 인격 앞에 무너지니까 이렇게 살 순 없다는 생각에 가까이 있는 캠퍼스, 병원 다니면서 봉사 전도하는 삶을 살았다. 세브란스 3년 암 병동에서도 봉사했는데 암에 걸리고 보니까 내가 절대 그 마음에 못 다가갔구나 알게 됐다. 지금은 환자들을 만나면 저절로 너무 불쌍하다. 완치 없이 각종 부작용 체크하면서 사는 삶인데 집안에서는 환자취급을 못 받는다. 할 거는 다 하고 사네라고 생각하니까. 이 마음을 알아드리면 마음이 가벼워지시고 위로를 받으신다. 어떤 분은 나를 만나 정신과약을 끊으신 분도 있다. 이럴 때 보람을 많이 느낀다”고 고백했다.
한주리 씨는 상담 봉사와 더불어 ‘쁘리모아모레’라는 중창팀을 만들어 활동을 이어가고 있기도 하다. 그는 “병원, 학교, 신우회 오라는 데는 어디든지 간다. 버스킹도 한다. 노래, 찬양에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삶이 힘든데 마음이 치료, 회복이 된다. 다시 한번 살아갈 힘을 얻는 것 같다”며 “처음 발병했을 때는 막막했는데 6년 차 되니까 무덤덤해졌다. 일상이 됐지만 암환자라는 사실은 결코 변하지도 않고 잊을 수도 없다. 덤으로 살고 있다. 인생이 너무 소중하다. 발병 전이나 후나 달라진 건 별로 없다. 병을 통해 인생 물 위의 삶뿐 아니라 물 밑의 삶도 알도록 초대하셨다는 생각이다. 어떻게 나에게 이런 기회를 주시는지... 단 한번 뿐인 소중한 삶을 살면서 미워하며 살고 싶지 않다. 감사하고 기쁘게 가고 싶다. 새벽마다 나를 붙들어주시는 힘의 근원은 예수님이다. 짧은 인생 사랑으로 승리하며 살다 가고 싶다. 환우 분들과 가족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을 마쳤다.
이 글은 2020년 3월 작성 시점의 정보입니다. 치료 기준·급여 정보는 바뀌었을 수 있으니, 진료와 치료 결정은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