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국립암연구센터] 암과 동행하기 직장편 ②
2020.02.28 · 암스쿨
5. 어떻게 살고, 일하고 싶은가? 본인이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암 치료에 의한 장기요양이, 유감스럽지만, 법적으로도 어려운 경우에는 다음으로 이어지는 사직 방법을 써주었으면 합니다. 자기에게 유리한 사직방법을 사용하기 바란다.
재취직 시에는, 암 치료나 후유증이 직무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는, 그것을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제시된 노동계약에 지장이 없다면 병명을 알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당하게 자신의 경력을 프레젠테이션 했으면 합니다.
다만, 일하는 데 있어서 기업으로부터의 배려가 필요한 경우는, 배려해 주었으면 하는 것을 제대로 이야기해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통원을 위해 한 달에 한 번의 휴무가 필요하면 그것을 알리는 것입니다. 상담해보면, 실제로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거나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건강상의 이유로 휴가를 내기도 하니까요.
게다가, 소아 암 경험자의 취직 상담에서는, 오히려 암 경험이 자신의 인생에 준 긍정적인 영향, 치료를 통해서 자신이 어떻게 성장했는지, 자신의 경험을 살려 들어가고 싶은 기업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자신이 거기서 무엇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한 위에 취직을 희망하는 기업에 대해 프레젠테이션을 하면 어떨지 조언을 합니다.
물론, 서류 심사와 면접시험 중 어느 쪽에서 프레젠테이션 할까 하는 타이밍은 중요합니다. 단지, "암을 경험했습니다."만으로는 설명 부족합니다. 병명을 밝힌다면, 그것을 상회하는 설명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인 암의 경우에서도 소아암의 경우에도, 사회에 나오면 모두 사회인으로 취급됩니다. 기업에게 플러스 부분이 많으면 채용될 것입니다. 암에 걸렸다는 현실을 지울 수는 없어요. 그 경험도 포함해 "지금, 자신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무엇을 생각했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떻게 일해 가고 싶은지, 그 솔직한 기분을 상대에게 전할 수 있는지, 본인이 얼마나 주체적으로 움직이는지가, 암 환자의 취업으로 연결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6. CSR 프로젝트를 통해 느낀 일을 계속하는 것의 중요성
나는, 2007년 9월부터, CSR 프로젝트라고 하는 활동을 개시했습니다. 통상, CSR이란,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의 약어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만, 여기서 말하는 CSR란 「Cancer Survivor Recruiting」의 약자로 「암 환자의 취업」을 생각하는 프로젝트응 가리킨다. 일본의 취업 세대의 암환자의 취업·고용의 실태를 분명히 하는 조사·연구가 적어, 우리는 조사의 실시나 제언서의 정리, 서적 등을 작성해, 사회에 발신해 왔습니다.
CSR 프로젝트에서는, 암환자나 가족으로부터의 취업 상담을 받고 있습니다. 상담하러 오시는 분들은 모두 당황해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상처받은 경험을 가지고 계신 분도 오십니다.
일하는 세대에 있어서, 일을 잃은 상실감은 병보다 큰 충격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우선 병 그 자체로 지금까지 있었던 세계로부터 격리된다. 다음에는 일을 잃음으로써 사회로부터 더욱 더 격리된다.
……이렇게 서서히 내몰리어 간다. 본인에게도, 가족에 있어서도, 괴로운 상황입니다. 하지만 상담을 반복해 나가는 사이에, 본인이 조금씩 힌트를 찾아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서 새로운 목표를 찾아내기 시작한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우리도 용기가 되고, 역시 인간에게는 누군가에게 상담하는,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괜찮을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어둠 속에 떨어져 있던 사람이 빛을 찾아, 사회로 돌아가는 모습은, 때로는 우리를 놀라게 하는 일조차 있습니다. 새로운 취직자리를 찾아서, 충실한 공부를 시작한다. 일에 복귀하여 활약한다. 거기까지 가는 길은 만사 순조로운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고 생각할 즈음 다시 벽에 부딪히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또 상담의 창구로 돌아와 줍니다. 가거나 오거나를 반복해 가는 사이에, 이윽고 과거의 경험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있습니다. 서로가 지지하는 모습은 우리에게도 기쁜 일입니다.
만약, 이것이 기업 안이라면, 새롭게 곤경에 처하는 환자나 가족에게 도움이 된다. "기업 내 peer support(동료의 지원)"와 같은 좋은 순환이 태어날 것입니다. 암 경험을 지금까지의 일에 "곱셈"해 나가는 것으로, 상승효과가 생겨 지금까지 이상으로 폭 넓게 의의가 있는 직업 인생이 걷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암 환자가 납득할 수 있는 직업인생을 걸어갈 수 있도록 앞으로도 지원하고 싶습니다.
7. 사원과 회사, 양방향의 커뮤니케이션을 소중히
사회보험 노무사 후지타 히사코씨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이 어느 날 암에 걸렸을 때. 구체적인 문제가 눈앞에 발생합니다. 얼마나 쉬어야 할까? 얼마나 쉴 수 있을까? 급여는 어떻게 되는가? 사회보험 등의 제도는 어떻게 활용되는가? 도대체 사원으로 남아있을 수 있는 것인가? 취업·노사 관계의 전문가이며, 자신도 암에 걸린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회보험 노무사 후지타 히사코씨의 이야기에서, 회사와 암의 관계에 대해서 배워갑시다.
암과 함께 일하는 직장 편
"사는 보람과 일하는 보람은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자신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사회보험 노무사의 입장에서 말씀드리면, 만약, 회사원이 암에 걸렸을 경우, 우선은 자신과 관련되는 기본적인 정보를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취업상담을 하고 있어서 자주 느끼는 것입니다만, 실은 많은 사람이 자기 자신의 노동조건의 내용에 대해 알지 못한 채 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확실히, 만약 상처를 입거나 병에 걸리거나 해서 장기간 쉬지 않으면 회사에서 어떻게 처우될 것인가, 라고 하는 것은, 건강할 때에는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암에 걸린 분은 물론이지만, 평상시부터, 우선은 자신의 노동 조건에 대해 잘 조사해 보기 바랍니다. 법률에 정해진 유급 휴가 이외에, 일정한 상병 휴가·요양 휴가를 얻을 수 있는 제도나, 한층 더 후한 사원 지원을 위한 복리후생 제도를 마련하고 있는 기업도 있습니다. 이러한 노동 조건은, 고용 계약서나 취업 규칙 등을 확인하면 기재되어 있습니다.
다만, 노동 조건이 기재된 서면은 눈에 익지 않는 법률 용어로 쓰여 있거나 하여 알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혼자서는 읽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 회사의 인사부 등에 문의해 보세요. 또한 우리 같은 사회보험 노무사도, 취업에 관한 법률도 포함해 상담에 응할 수 있는 입장에 있습니다.
암에 걸려도 그렇지 않아도, 우선은 막상 암에 걸렸을 때의 사내에 서의 자신의 입장을 알고, 이용할 수 있는 제도를 알아둔다. 그 다음, 필요에 따라서 제도를 활용해 나간다. 이것이 이후의 암 치료와 나아가 복귀했을 때의 일과의 양립을 향한 출발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회사는 어떨까요?
회사는, 우선, 암에 걸린 사원이 치료 중에 이용할 수 있는 제도나 규칙, 휴업 중의 신분이나 처우에 대해 확실히 알려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사원을 지원하는 의미에서는, 암의 고지를 받고 정신면에서 쇼크를 받거나 혼란스러워 하거나 하는 사원에 대해서, 치료 후의 캐리어 플랜이나 최적의 작업 환경에 대해 함께 생각하여 답을 찾아 간다고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단, 암에 걸린 사원 자신도, 회사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적극적으로 일해 지원을 이끌어 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나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오는 반성을 포함한 생각입니다.
제 자신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나는, 20 몇 년을 근무한 이전 회사에서 지금부터 일의 내용이나 사내에서 책임이 무거워지는 말하자면 한창 일할 때라고 불리는 시기에 들어간 타이밍에, 암에 걸려 9개월 정도 휴직했습니다.
치료가 일단락되어 원래 직장에 복직해보니, 주어진 일은 부담이 적은 내용으로, 소프트 랜딩이라는 의미로는 매우 고마웠습니다만, 그 후로도 쭉 같은 일을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이대로 나는 퇴직할 때까지 이 일을 계속 할 것인가"라고 매우 고민했습니다.
한편, 내 마음속에는, 일을 너무 많이 해서 몸을 망쳐 암에 걸린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무리하면 다시 컨디션이 망가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을 안고 있었습니다.
암 치료에서 복직한 나는 과거의 '일하고 있던 자신'이라는 셀프 이미지와 '생각대로 일할 수 없다, 일할 게 좀 무서운 지금의 자신'이라는 현실과의 차이로 인해 고민하고, 그 차이가 날로 커지고 있었습니다.
너무 괴로운 나날이었어요.
단지, 이때의 저는, 사내에서는 누구에게도 상담하지 않았습니다. 이전의 자신과 지금 자기 사이에 가로놓인 갭은 자기 자신의 문제이기 때문에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상사에게도, 동료에게도, 하물며 산업의産業醫 등에도 그러한 고민을 털어놓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태가 1년 정도 계속되었습니다. 나중에 주위 사람에게 물어보았는데 당시 저는 표정마저 어두웠다고 합니다. 그 후 저는 과감히 이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일에 종사해, 간신히 과거의 자신의 상황을 냉정하게 되돌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회사도 사람의 모임입니다. 암이나 중병에 걸린 사원을 품은 경험이 적은 회사는, 그런 사원을 어떻게 대해야 좋을지 모르고, 마치 부스럼을 만지는 것처럼 소극적인 대응이 되어 버리는 일이 있습니다.
암에 걸려 치료가 일단락되어 복귀한 사원도, 이전과 같은 체력이 없어진 사례가 많기 때문에, 컨디션을 고려해 적극적으로 일에 종사할 수 없게 되는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결과, 회사도 사원도 쌍방이 서로 삼가고 있는 사이에, 회사로서는 그 사원이 취급하기 어려운 존재가 되어, 사원 자신도 있을 곳을 잃어 회사에 있는 것이 괴로워져 버리는, 불행한 상황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원과 회사의 상호 의사소통이 중요합니다. 쌍방향의 소통을 하는 중에 사원도 일하기 쉽고, 회사 측도 플러스가 되는 방법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암으로부터 복귀한 사원이 계속 일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취업 규칙을 바꾼다, 과격한 것이 아니고, 아주 약간의 배려나 궁리를 하거나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것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어떨지 여부가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어떨지의 분기점이 되기도 합니다.
나의 경우도, 복직 후, 혼자서 끙끙대지 않고, 상사나 인사부에 상담하거나 자신이 안고 있던 마음을 알리거나 하는 것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라고 지금은 생각합니다. 일은 나에게 있어서, 단지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닌, 인생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며, 일하는 보람이나, 자신의 성장을 달성해 가는 장소라고, 되돌아보고 생각합니다. 일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자기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존재입니다.
길어지는 불황이나 경제구조의 변화에 의해서, 최근에는, 정규직 사원 이외에, 계약 사원·파견 사원·파트·아르바이트라고 하는 다양한 취업 형태의 사람이 회사 안에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는 정사원과는 다른 엄중한 현실이 있습니다.
우선, 계약기간의 만료 후, 계약이 연장되지 않고 그대로 일자리를 잃어버리는 사례가 매우 많습니다. 그리고 일단 직장을 잃어버리면, 이번은 취직 활동 시에 한층 더 고민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취직 사정인데다가, 암에 걸렸다고 하는 현실이 무거운 것이 되겠지요. 그 때문에 채용 시의 면접 등에서 자신의 병을 전해야 하는지 말하지 않고 두어야 할 것인가, 말한다면 어느 타이밍에 어디까지 전해야 할 것인가에 고민하시는 분은 매우 많습니다.
이럴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죠? 우선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고 밖에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만, 만약, 일하는 데 있어서 정기적인 통원의 필요 등, 기업 측에 배려를 받고 싶은 것이 있는 경우, 병명은 말하지 않아도 좋기 때문에, 배려해 주었으면 하는 점에 대해서는 회사 측에 구체적으로 알리는 것이 좋다고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물론, 전달하는 방법이나 전하는 타이밍은 궁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선은, 자신이 어떻게 그 회사에서 공헌할 수 있는지를 제대로 어필한 후에, 전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고용 기간의 만료를 기다리지 않고 일방적으로 해고되거나 노동 조건을 부당하게 절하당하거나 따돌림을 당한다고 하는, 분명하게 부당한 케이스도 유감스럽게도 있습니다. 이 경우는, "종합 노동 상담 코너"라고 하는 공적인 상담 기관이나(특정) 사회보험 노무사에게 상담하는 등을 하여 자신을 지켜 주셨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저희가 했던 직업소개 사업에서 성공한 일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떤 기업에 암 치료 중인 분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은 그 기업이 요구하는 기술을 제대로 가지고 계셨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그 기업에 대해서, 우선 이 분이 요구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 단지 현재 암 치료 중인 것, 그 때문에 치료가 계속 될 수 있도록 배려가 요구된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후, 이분은 무사히 채용되었습니다. 거기에다 나중에 기업 측으로부터 매우 좋은 인재를 소개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암의 이환의 유무에 관계없이, 기술을 포함한 그런 자신을 평가하여 적극적으로 채용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기업이 반드시 존재하는 것을, 꼭 많은 분들이 알아주었으면 하고 생각합니다.
8. 암에 걸리기 전의 신뢰관계가 자신을 지탱해주었습니다
모리타 기술연구소 공업(주) 대표이사
세이 케이스케 씨
세이씨가 암에 걸린 것은, 창업한지 불과 2개월 후. 자금을 빌려 시작한 지 얼마 안됐습니다. 그런데도 가족이나 사원, 거래처의 협력으로, 회사를 궤도에 올려 현재는 NPO(비영리 조직)의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암과 동행하며 일하고, 암과 맞서고 있는 세이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봅시다.
저는 현재, 산업용 기계를 설계 제작하는 회사를 도쿠시마 현 아난 시내에서 영업하고 있습니다. 창업한 것은 2003년 5월에 있었던 일입니다. 은행이나 친구들로부터 빚도 졌어요. 그래도 나는 모두가 노력하면 변제가 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렇지만 창업한지 2개월 후 말도 안 되는 사태에 말려들었습니다.
내 자신이 대장암에 걸린 것으로 판명된 겁니다.
저도 놀랐어요. 그 이상으로 놀랜 것은 사원들이나 융자를 해준 친구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등학생과 중학생 자녀를 둔 아내의 충격은 더 컸나 봐요. 창업한 것도, 그 직후에 대장암에 걸린 것도, 확실히 인생 최대의 위기였다고 생각합니다.
당초, 나는, 암에 걸려 큰 쇼크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확실히 쇼크이기는 했지만, 수술로 잘라 버리면 나을 거라고, 어느 쪽인가 하면,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 CT나 MRI 등의 검사를 받은 결과, 간에도 상당한 전이가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이니까 이해할 수 있지만, 실은 나의 암은 "4기"라고 아주 심각한 병세였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나는 "4기라면 5년 생존율이 ×× 등" 이라고 하는 숫자나 말을 별로 개의치 않고, 어쨌든 수술로 병소를 잘라내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대장암 수술을 마치고 일단 안심했지만 한 달 뒤 검사로 간전이 병소는 절제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어요. 한층 더 난처하게도, 소변이 전혀 나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한편, 대변은 새어 버립니다. 당시에는 평정을 가장했는데 이건 정말 힘들었어요. 일에도 큰 지장을 초래할 것은 상상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때의 나는 정말로 만신창이였습니다. 몸속에는 아직 암이 남아 있고, 게다가 수술 후유증으로 용변을 제대로 못 본다는 상태였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퇴원 후 바로 창업한 지 얼마 안 된 회사로 복귀해 일을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
퇴원 후의 치료는 경구용 약뿐이었기 때문에, 그 자체는 큰 부담은 아니었지만, 문제는 배뇨·배변과 관계되는 케어(Care)입니다.
배뇨를 유도하는 것(일정 시간마다 요尿 카테터(Catheter)를 사용해 배뇨하는 것)에도 기구의 소독을 하고 나서 끝마칠 때까지 반시간 걸려 버리고, 배변에 관해서도, 새어버릴 경우는, 일과 중이라도 일단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는 옷을 갈아입고 회사로 되돌아가는 수고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이쪽의 케어에 대해서는, 아내의 협력이 있었기 때문에 극복할 수 없었습니다. 아내의 보탬이 없었다면 일을 계속할 수 없었을 겁니다. 고객과의 업무 협의를 위한 출장에도 아내는 모두 동행해 주었습니다. 평소의 케어뿐만 아니라 식사도 저를 위해 애를 써서 만들어 주는 등 모든 면에서 도움을 주었어요.
힘들었던 배뇨·배편의 케어도 1년 정도로 어떻게든 되어서, 현재는 보통의 생활을 보낼 수 있습니다.
내가 암을 안고 어떻게든 일을 해올 수 있던 것은, 아내의 협력 이외에 또 하나, 창업한지 얼마 안 된 회사의 경영을 사원들이 지원해 주었다고 하는 것이 컸을지도 모릅니다. 당시 회사는 저를 포함해 총 5~6명. 소규모의 조직이었으므로, 서로 충분히 의사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직원들은 제 몸 상태나 케어의 어려움에 대해 확실히 이해해 주었습니다. 게다가, "반드시 낫는다."라고 믿어주었습니다. 도중에 살이 많이 빠져서 직원들에게는 걱정을 끼쳤지만, 그럴 때에도 모두가 지원해 주었어요.
고객인 거래처 분들도 많이 이해를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암인 것을 숨기지 않고 상대방에게도 전하고 있었습니다만, 이해를 해 주셔서, 장시간에 이르는 회의에서는 도중에 휴식을 취하는 등의 배려를 해 주셨습니다. 정말 고마웠습니다.
암에 걸리기 전의 저는, 뭐든지 스스로 해버려야 한다는 유형이었지만, 암에 걸리곤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분에게 맡겨지는 부분은 부탁한다, 의지한다, 라는 식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달라질 수밖에 없었던 것도 불가피했지만, 그로 인해 팀워크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단지 암에 걸렸으니, 급히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도와줄 수 있게 된다, 라고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암에 걸리기 전까지, 가족과의 관계, 직원과의 관계, 거래처와의 관계에서, 두터운 신뢰 관계가 쌓아지고 있는지가, 정작 유사시에 결정적이 되는 것은 아닐까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저는 가족도 사원도 거래처 고객도 암에 걸린 저를 지원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평상시부터의 신뢰 관계의 연장선상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아내 이야기로 돌아갈 겁니다.
제가 투병 중일 무렵, 아내는 친구들과 교토의 절에 참배하러 갔습니다. 그 절은 소원을 하나만 풀어준답니다. 고맙게도 아내 친구들은 모두 제 병이 낫도록 기도해 주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내만큼은 달랐어요.
아내가 원했던 것은 아내 자신의 건강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쓰러지면 끝입니다. 아직 아이도 독립하지 않았고. 만약 당신이 죽게 된다면 내가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 당신뿐만 아니라 나까지 쓰러지면 아이들을 지킬 수 없어요.」
아내의 말에 저는 감동했습니다.
그런 아내와 가족, 사원, 손님, 친구, 많은 사람들이 저는 도움을 받아 여기까지 왔습니다. 힘껏 서바이벌 한 겁니다. 도와주신 여러분을 위해서도, 힘껏 살아가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2020년 2월 작성 시점의 정보입니다. 치료 기준·급여 정보는 바뀌었을 수 있으니, 진료와 치료 결정은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세요.



